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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라는 민감한 소재를 중심으로, 혈연이 아닌 관계 속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감성 드라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섬세한 시선과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등 배우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어우러지며 한국 사회의 사각지대를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비춘다. 이 글에서는 브로커가 보여주는 관계의 복잡함, 가족의 새로운 정의, 그리고 감독 특유의 연출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버려진 아이, 주운 사람들 — 시작부터 질문이 되는 이야기
한밤중, 젊은 여성이 교회 앞 ‘베이비 박스’에 아이를 놓고 간다. 그리고 그 아이를 몰래 데려간 두 남자. 이들은 입양을 알선하는 불법 브로커다. 그러나 아이를 다시 찾으러 온 엄마와 뜻밖의 동행이 시작되며, 이 셋은 예상치 못한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여기서 영화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상황의 복잡함과 사람들의 진심을 따라간다. ‘누가 더 나쁜가’가 아닌, ‘누가 이 아이에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관객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선악을 구분할 수 없다. 모두가 죄를 지었지만, 동시에 모두가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 한다.
혈연이 아닌 관계, 그럼에도 가족
브로커의 중심에는 ‘가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물음이 있다. 함께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같은 차 안에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며 조금씩 감정이 만들어진다. 송강호는 브로커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아이를 챙기고, 강동원은 죄책감을 품은 채 침묵 속에서 배려를 보이며, 이지은은 상처받았지만 강한 엄마로 변화한다. 이 세 사람의 감정선은 한 줄로 이어지지 않고, 충돌과 협력,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서서히 ‘가족’의 모습을 갖춰간다. 진짜 가족이란 무엇일까? 이 영화는 그 답을 정하지 않는다. 다만 진심으로 연결된 관계라면, 그 자체로 충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따뜻한 카메라
브로커는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한국 배우들과 함께 만든 첫 한국 영화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의 대표작 어느 가족처럼, 이 영화 역시 ‘사회 밖의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카메라는 사람들의 뒷모습,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선, 울지 않으려 애쓰는 표정을 길게 담는다. 자극적이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저 관찰자처럼 그들을 따라간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겨진 침묵은, 어쩌면 가장 많은 것을 말해주는 순간이다.
브로커는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관계들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작품이다. 선도 악도 아닌 사람들, 법 밖에서 벌어지는 인간적인 선택들. 이 영화는 ‘가족’이란 단어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감정선으로, 꼭 한 번은 만나야 할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