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팁스타의 혼잣말 영화리뷰

벌새 (성장, 여성, 감정 서사)

tipstagram 혼잣말리뷰 2025. 5. 21.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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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는 1994년 서울을 배경으로, 14세 소녀 은희가 가족, 친구, 첫사랑,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이해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대단한 사건 없이도 인물의 내면과 감정을 따라가며, 삶의 사소한 균열들이 어떻게 한 사람을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주는 감정 중심의 성장 영화다.

사소하지만 절대적인 순간들

은희(박지후 분)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조용한 아픔들로 가득하다. 가정폭력, 무관심한 부모, 사랑받지 못하는 감정, 그리고 자신을 지켜보는 세계의 불균형. 벌새는 거대한 사건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은 감정, 들리지 않는 한숨, 적막한 교실과 복도, 누군가가 잠시 머물다 간 말 한 마디에 집중한다. 그 모든 것이 은희에게는 세상을 구성하는 절대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은희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여성 성장서사의 새로운 기준

그동안 성장 영화에서 소녀는 종종 주변 인물이었지만, 벌새는 은희의 시선을 중심으로 모든 서사를 전개한다. 그녀의 감정, 혼란, 선택이 이야기의 축이다. 특히 한문 선생님 영지(김새벽 분)와의 만남은 은희에게 ‘진짜로 나를 바라봐 주는 어른’을 처음 만나게 해준다. 이 관계는 단순한 멘토링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이어진 이해와 연대다. 여성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성장하고,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모습은 벌새를 한국 여성 성장 영화의 새로운 기준으로 만든다.

시대의 공기, 감정의 호흡

배경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사회 전반의 변화가 배경처럼 흐른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감정과 미세한 표정, 삶의 호흡 속에 그 시대의 공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카메라는 빠르게 움직이지 않고, 긴 호흡으로 은희를 바라본다. 이런 연출은 은희의 내면을 관객이 함께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벌새는 설명보다 공감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누구에게나 있었던 그 시절의 감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벌새는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섬세하다. 한 소녀의 내면을 따라가며,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감정들을 마주하게 만든다. 성장, 여성, 감정 서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만나야 할 영화다. 가장 작고 조용한 울림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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